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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22년 여름 휴가 3 - 보은 말티재 전망대, 정이품송, 법주사

by 진규은규아빠 2023. 3. 19.

아침에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습니다.

주변에 있는 말티재 전망대로 향합니다.

 

말티재 전망대는 2020년 개장해서 2층의 전망대 및 조형물로 12굽이의 말티고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말티고개 이름의 유래라고 합니다.

“보은현의 동쪽 6km에 있고, 고개 위 1.6km에 걸쳐 얇은 돌을 포장하였다. 고려 태조왕건이 속리산 행차 때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서 길을 닦았다”는 기록은, 중종 26년(153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이 전하는 이야기로, ‘말티고개’라는 이름은 조선왕 “세조가 피부병으로 요양 차 속리산에 행차할 때, 험준한 이 고개에 다다라 타고 왔던 어연에서 내려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고개 이름의 유래하고 합니다.

또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고개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라는 이름유래도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주차하고 가볍게 둘러보기 좋습니다.

 

 

 

둘러보고 이동합니다.

이번에는 법주사로 이동하는 길에 있는 정이품송입니다

 

지나가는 길에 

오래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무조건 그 나무를 향해 경배할 일이다

 

안도현의 시 ‘산이나 들판으로 소풍을 가면’ 중 일부 시구절입니다.

속리산에는 그중 한 나무는 안도현의 시를 들추지 않더라도 길을 지나던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다가가 발걸음을 멈추는 곳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입니다.

일찍이 조선의 왕과 연을 맺어 장관이 된 지체 높은 소나무로 세조(1455~1468)가 속리산 법주사에 행차할 때 이 나무를 지나는데, 연이 걸리지 않도록 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신통한 이야기. 세조가 타고 가던 연이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해 “연이 나뭇가지에 걸린다!” 소리치자 일어난 이야기라고 합니다. 초자연적 현상을 목도한 세조는 즉시 가마를 세워 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고, 감투에 감복했는지 나무는 또다시 초자연적 힘을 발휘했고, 세조가 법주사에 머물다 돌아갈 때 비를 내려 쉬어가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습이 다릅니다.

 

 

법주사 가는 길에 연꽃도 피었네요

 

 

 

식당으로 갑니다.

주변 식당 중에서 나름 유명한 식당으로 보이네요

한정식 전문점 경희식당입니다.

 

식사를 하고 법주사로 이동합니다.

 

법주사를 들어가는 길도 산책을 하기 좋네요.

세조길이라고 불립니다.

 

법주사 앞에 흐르는 달천 풍경입니다. 수량이 많아 폭도 넓습니다
달천의 유래는 속리산 최고봉 천왕봉에서 유래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된 법주사입니다.

'한국의 전통 산사(Traditional Buddhist Mountain Temples of Korea)'라는 이름으로 등재된 내용을 보면,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등 이들 산사는 사찰 건축 양식, 공간 배치 등에서 인도 유래 불교의 원형을 유지하고 중국적인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우리나라의 토착성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불교문화 교류의 증거임을 문화재청은 밝히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은 유네스코 누리집(http://www.unesco.org)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라는 뜻을 가진 속리산 법주사입니다.

 

통일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대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속리산의 웅장하고 험준한 산세를 보고 불도를 펴기 위해 큰 절을 세웠다는 법주사. 불경을 가져온 의신이 머물렀다 해서 그 이름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법주사 일주문 전경입니다. '호서제일가람'이라는 편액이 보이네요

 

법주사 천왕문입니다. 양쪽의 전나무가 무척 인상적이네요

 

 

법주사는 통일신라부터 고려, 조선시대 등 각 시대의 중요 불교문화유산이 전해지는 대찰이라고 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법주사탐방의 중심 팔상전(국보 55호)이 보입니다.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이 목조탑입니다.

 

 

 

이번에는 쌍사자 석등(국보 5호)입니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통일시대 성덕왕 19년(720년)으로 추측되며,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톡특한 형태하고 합니다.

 

대웅보전과 일직선상에 있는 쌍사자 석등

 

대웅보전입니다.

 

 

 

63년 만에 빛을 본 금동미륵대불이라고 합니다.

용화보전에 봉안되어 있던 장육존상을 대원군이 경복궁 역사에 필요한 당백전을 만들기 위하여 파괴한 후 헐린 용화보전과 장육존상의 10배에 이르는 거대한 미륵대불 조성이 시작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39년 한국 근대조각의 대가인 김복진이 맡아 시작된 미륵대불 조성은 시멘트조로 진행되었습니다. 불상을 조성하던 중 80%의 공정이 진행되는 상태에서 625 동란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종전 이후 나머지 공정을 진행하여 1964년 5월에 이르러서야 대불의 완성을 보았으나 자연 훼손이 심해 1986년 해체하고, 시멘트조 크기와 모습 그대로 1990년 4월 청동제 미륵대불로 다시 조성하여 완성을 보았고, 청동 116t이 들어간 세계 최대 청동제 미륵불의 탄생이었습니다. 이후 2000년 개금불사를 일으켜 2년 만인 2002년 황금 80kg을 들여 금동미륵대불을 완성했고, 이 불상은 세계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높이 33m이며 높이 8m의 기단부 안에는 31 용화전이 있다고 합니다.

 

 

 

 

보물 제1413호 법주사 철솥으로 그 크기만 보아도 대찰 법주사의 사세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오늘의 숙소인 충북 영동군에 위치한 민주지산오토캠핑장입니다.

숙소에 조금 늦게 도착해 사진이 거의 없네요 ㅎㅎ

고기 구워먹고 남은 목장갑만 남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