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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래

<오늘의 책>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by 진규은규아빠 2009. 2. 12.


오늘은 광석 형 기일.
그를 추억하며 책 한 권 읽다. 

http://book.naver.com/todaybook/todaybook_vw.nhn?mnu_cd=naver&show_dt=20090106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NO 곡 제목 듣기
1.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김광석
2. 변해가네-김광석
3.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김광석
4. 바람이 불어 오는 곳-김광석
5. 거리에서-김광석
6. 사랑했지만-김광석
7. 사랑이라는 이유로-김광석
8.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김광석
9. 서른 즈음에-김광석

 

 

 

 

 

 

 

 

 

    

“서른셋에 죽음을 선택한 남자, 이제 그보다 더 많은 나이를 살아가는 나는, 그의 영원한 젊음이 슬프다. 한동안은 다시 그가 나지막이 건네는 목소리로 이 거리를, 이 세월을 견뎌야겠지. 낡은 레코드판 속의 노래를 들으며 오래 흔들리거나 서성이게 되겠지.”

  
ㆍ 또 하루 멀어져 간다 

1월 6일, 오늘은 광석 형이 세상을 떠난 날. 그게 1996년이었으니 올해로 13주년이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도 누군가를 잊기엔 충분하지 않다. 그의 기일이면 함께 모여 술을 마시며 그를 추억하던 친구들도 하나씩 둘씩 흩어지고 없다. 꼭 그의 노래처럼 하루는 또 멀어져 가고, 기억은 자주 못된 취기를 따라 흔들린다.

 언젠가 카페를 운영하던 후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3~40대들은요, 새로운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그들이 왔을 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해요. 그런 음악 틀면 다 나가버리니까. 그래서 적당한 때 김현식이나 김광석을 틀어야 해요. 난 아저씨들의 그런 음악 세계가 너무 편협해 보여요. 왜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죠? 왜 과거에만 묻혀 사는 걸까요?”

 나는 “응,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세대가 좀 그런 면이 있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마음으로 동의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광석의 목소리에는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들로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픔이 녹아 있다는 것을 후배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길을 걷다 우연히 김현식이나 유재하의 노래가 들려오면 그 자리에 서서 꼼짝없이 들을 수밖에 없는 유전자를 타고 났으니까. 그렇게 길들여졌으니까.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존재한다.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에 베인 듯
어찌 할 수 없는 사랑,
어찌 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들 말이다. 

 ㆍ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광석을 생각하면 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김광석은 내게 있어 취기를 동반하는 자다. 그것은 그가 지닌 비극적인 죽음의 진행 탓일 수도 있지만 그를 떠올릴 때, 어느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느 하나 내 젊음의 인연과 이어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왜 서른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택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 애달픈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내 젊음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던 추억들 또한 모두 소멸되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가 마지막 앨범을 낸 것은 그의 나이 서른두 살 때의 일이다. 그는 앨범 말미에 ‘수박 꿈을 잘 꾸는 사람들에게’라고 적어 두었다. 그가 말한 수박 꿈은 무엇이었을까. 여름철 벌겋게 익어 시린 핏빛 몸뚱이처럼 싱싱한 꿈이었을까, 아니면 푸름에 지쳐 곤혹스럽던 단단한 껍질에 대한 상념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이런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또 하루 멀어져간다.”라고 노래할 뿐이다. 그것은 서른두 살짜리 남자가 가질 법한 아름다운 거만이다. 더 이상 무엇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거대하고 위협적이던 세상을 오히려 관조하며, 무엇 하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언제부터였을까. 이 지긋지긋한 관성의 힘을 배워 나가기 시작한 것은. 열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도 아닌 감정들이 펼쳐 내는 이 소모. 치기 어린 젊은 날의 서정도 아니고, 노회함의 뻔뻔스러움도 아닌 이 쓸쓸한 관성. 그러므로 불행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열정의 소진을 앞세우기 위해 그토록 허무했던 청춘.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젊은 날의 어지러움들. 아, 새삼스레 아름답다.

 ㆍ 부치지 않은 편지

 여름이 시작되던 파랑새 소극장을 기억한다. 또 가을날의 학전을 기억한다. 그 길가마다 내 젊은 날을 떼어 낸 조각들이 있고, 그의 노래들이 있다. 학전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나오던 날, 대학로의 그 넓은 횡단보도에는 작은 키의 그가 신호등 아래 홀로 서서 밝게 웃고 있었다. 기타도 없이, 무엇 하나 손에 든 것도 없이, 그렇게 빈손인 채, 그는 어디로 가기 위해 그곳에 서서 나와 마주쳤을까…. 누구를 향해 그렇게 웃고 있었을까….

 

마정원이 그린 횡단보도 위의 김광석

 아직도 노래 부르고 있을까?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노래들을 만들어 세상에 ‘부치지 않은 편지’로 띄우고 있을까? 그가 있는 곳에도 바라볼 강이 있고, 간직할 노을이 있을까? 귓가를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이 있을까? 이제쯤엔 그 어디에라도 마음 쉴 곳 하나 마련했을까? 내 젊었던 시절처럼 편지 받을 주소 한 줄, 편지 띄울 우표 한 장 없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그렇게 김광석을 다시 들으며 내 젊음의 기억 하나가 죽어가는 것을 본다. 결코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젊음이다. 문득, 계절은 수상하고 오늘 새벽엔 생각지 못했던 비가 내렸다. 사랑은 없었고, 약속은 스스로를 이기지 못한 채 깨어졌다. 아련한 것은 밤새 잠들지 못하고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가던 김광석의 노래뿐….

 그가 죽음을 선택했던 그 겨울날, 선배 두 명과 술을 마셨다. 말없이 그의 노래를 듣던 선배는 “김광석 개새끼….”라며 눈물을 글썽거렸고, 한 선배는 묵묵히 술잔만 기울였다. 나는 많이 취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선배를 따라 ‘김광석 개새끼….’ 욕할 수밖에 없었다. ‘나쁜 새끼. 왜 죽었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해 집으로 돌아오던 전철 안에서 누군가 “오늘 김광석이 죽었대.”라고 지나가듯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비로소 눈물이 쏟아졌다. 전철 창가에 얼굴을 묻고 어쩔 수 없는 몸짓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ㆍ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늘 꿈꾸기를 판 하나만 더 내놨더라면 하는 마음이었다. 더 바라지 않았을 테니 판 하나만 더 내놓고 떠났더라면 했다. 세상에 내가 모르던 그의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그가 죽은 후 라디오에서였다. 그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를 처음 들었을 때 난 어쩐지 배신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남겨서는 안 될 노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앨범 작업을 끝냈어야 했다. 그를 추억하고,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작별의 선물을 남기고 갔어야 했다.

 오래된 사진이 한 장 있다. 김광석이 찡그린 듯, 웃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사진가 임종진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가 김광석을 추억하는 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를 냈다는 것도 그러했다. 나는 조심스러운 손으로 가만히 책장을 넘긴다. 글자 하나하나를 눈이 아니라 귀로 읽는다. 그가 들려주는 김광석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읽는다. 당신도 그러했구나, 고개 끄덕이다가 나 또한 그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추억하는 자, 임종진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술집에서 같은 노래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르겠다. 김광석의 기타가 있던 공연장에서 함께 노래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임종진이 사진과 글로 남긴 추억이 노래처럼 들려온다. 그래, 이러면 됐다. 충분하다. 김광석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떠났으니까. 아직도 가슴 아프게 들을 노래가 있으니까. 판 하나쯤 더 내놓지 않았더라도 이미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남겼으니까…. 그것을 일깨워 준 임종진의 사진들이 참으로 눈물겹다.

 
다시 김광석의 사진을 본다.
그는 사진 속에서 영원히 서른세 살이다.
그게 슬프다.

40대가 멀이 않아 보인다. 


40대가 멀이 않아 보인다. 
이제 나의 40대는 누구의 노래를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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